"그래서 둘이 언제 사귄다고?" "얘는!" 아니, 얼굴도 안 비추고 슥 사라졌다가 기념 공연 시간도 겨우 맞춰왔잖아. 약간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투덜대는 준은 말없이 고기를 뒤집는 이안을 쉴 새 없이 힐끔댔다. 안 만날 것도 아닌데 질질 끄나 싶어서 안 그래도 조금 망설여졌는데, 대놓고 저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이거 먹어, 뜨거...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는데, 무도회에 갔던 날 꽃을 한 송이 꺾어가려고 했었어" "....... 꽃이요?" "응.. 화원의 장미꽃 한 송이.. 너희가 좋아할 것 같아서" 장미꽃 대신 허름한 비석에 하얀 꽃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샤론이 애써 웃었다. 그녀의 목에 걸린 줄 시계가 동화 마을의 마지막 흔적이다. 제이의 바람대로 모든 마법은 사라지고, 죽은 것들은...
민이는 웬 남자 얘기냐고 나를 다그쳤지만, 나는 있는 친구 없는 친구 다 끌어모아 누군가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대기실 한 구석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이안과 흘끗거리는 반테를 애써 무시한 채 이어마이크를 정리했다. "어? 갑자기 왜 그러냐고" "갑자기라니, 뭐 저 아세요?" "....넌 일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아냐" 쥬니한테 전처럼 신경 쓸 ...
"누가 좀 말려봐" "그냥 둬" 문 너머에서 서럽게 우는 봄이 목소리만 들렸다. 맨발로 집을 나선 덕분에 엉망이 된 발을 정리하자마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봄을 따끔하게 혼내는 준에 밖에 남겨진 멤버들만 안절부절했다. 밖에 나간 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혼자 몰래 나가서는 안 된다는 걸 조심스레 설명한 준은, 외출이 정말 무서운 일이 되지 않아 다행인 마...
결국 오랜만에 다 같이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한 멤버들은 문득 서늘함에 하나둘 눈을 떴다. 뭐야.... 베란다 문 열어놨어? 좀 닫아. 끄트머리에서 자던 이안을 민이 발로 툭툭 쳤지만 눈을 뜬 디디는 굳게 닫힌 베란다 창을 확인했다. 바람보다 서늘한 기분이 훅 끼쳤다. 중문에 가려진 현관 앞으로 걸어가자 중문과 현관문 전부 휑하니 열려있는 게 보...
"귀여운 오빠는 잘 있고?" "그래" 소유는 당장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디디를 알아보기를 택했다. 부쩍 질문이 많아졌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패턴이기는 했지만, 종국에는 디디의 가족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 누가 누구를 상담하는지 모를 지경이 됐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잔뜩 풀어진 실험복을 정갈하게 잠가주는 걸로 상담 시간을 시작한 디디가...
"정말 같이 가주게? 재미없을 텐데" "응. 둘이 너무 친해서 안 되겠어" 내가 더 친해져야지~ 놀리듯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이안에 소원이 한결 편한 표정을 지었다. 준이 행사로 가는 전시회에 초청받아 가는 게 대외적인 상황이었지만, 사실 오랜만에 본 김에 맛있는 거 사 먹고 놀자는 준의 애교였다. 재회하던 날 먹은 만찬에서는 말하랴 밥 먹으랴 정신없던...
"..... 이야기를 손보고 싶다고?" "네" "어떤 식으로?" "... 저와 지냈던 기억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왕궁에 간 그 아가씨 말하는 거지?" "예" 너에 대한 기억을 지우려면 왕궁에 가기 전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갈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그게 제가 바라는 겁니다" 제이가 내어준 따뜻한 차에서는 묘한 향이 났다. 준을 위아래로 뜯어보는 눈...
"망설일 거 없어, 좋은 기회잖아" 아이들을 재우는 그 순간까지 준은 샤론의 눈을 마주 보지 않았다. 샤론은 준의 감정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정말 상관없는 거야? 내가 필요하기는 해? 따지듯 물을 상황도 아니었기에 답답하기만 했다. 샤론은 이따금 준과 제가 아이들로 인해 묶여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 가득하다기에 준은 무뚝뚝하고 표현에 인색했...
동화 속 사람들은 나이들지 않는다. 작은 요정으로 태어났다가 성장은 끝나고 정해진 외관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도, 귀여운 엄지공주도 탄생과 함께 부여받은 이름과 얼굴로 평생을 산다. 삶의 길이가 정해져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잊혀지는 그 순간, 몸은 풍선처럼 부풀고 가벼워져 이내 저 ...
"봄이 뭐해?" "어빠들 봐" 나 여기 있는데. 중얼거리는 민을 제이가 어깨로 툭 쳤다. 모처럼 잔잔한 목요일 아홉 시. 비척비척 걸어 나온 민을 제외하고도 제이와 디디가 나와 있는 상태였지만 봄은 무심하게 거실 바닥에 스케치북을 펴고 엎드려 티비 모니터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광고 시간이 이 분 정도 남은 모 프로그램이 방영할 시간이었다. 그게 오늘이었나....
한숨입니다. 기별 없이 오래 쉬게 되어 기다려주신 분들도 많으신 만큼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첫작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던만큼 완결과 동시에 좀 힘든 마음이 들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일까지 모두 정리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자연스레 좋아했던 일들이 생각나네요. 쉬는 동안 많은 분들의 글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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